앞서서 “투자는 절대로 장난이 아니다” 칼럼에서 투자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시장 속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깊이있는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몇 가지 예시를 다시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건강한 신체를 가꾸기 위해 체중감량이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 세운 적절한 식이조절과 운동 등의 계획이 적절하다면 이것을 꾸준히 실천하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타고난 유전적 요소와 본인의 생활환경, 그리고 음식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에 따라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고, 체중감량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과정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어떤 외부적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옆집 순이가 체중감량을 같이 한다고 해서 내 체중감량의 성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번에는 시험 성적을 올려서 좋은 등수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성적을 올린다는 목표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다른 어떤 활동보다 학업을 우선시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만한 적절한 학습패턴을 반복하면 적어도 이전보다는 좋은 성과를 거둘 확률이 올라갈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체중감량과는 달리 외부변수가 나의 성적에 영향을 어느 정도 줄 수 있습니다. 내 학습계획과 노력과 무관하게 성적은 어디까지나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나 이외의 다른 학생들의 상태라는 변수가 있으며, 또 그 날의 운과 컨디션 등에 따라 준비한 곳에서 문제가 많이 출제되거나 몇 개 찍었는데 더 맞았더거나 하는 식의 변수 또한 등수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더 우수한 교육과정과 선생님, 학부모의 지원, 계속해서 변화하는 입시 시스템 등에 따라 나의 ‘실력’과 무관하게 성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투자’라는 행위는 어떨까요? 투자라는 행위는 그 자체는 매우 간단하기 이를데 없고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시장은 상승 아니면 하락이고, 이 게임의 규칙은 매수 아니면 매도 이기 때문에 홀짝게임처럼 이해하기 쉽고 실행하는데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거나 제한된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체중감량이나 성적올리기보다 쉽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노력과 연구가 시장에 영향을 주는 바는 현저히 적으며, 나의 성과는 시장의 성과와 방향에 거의 전적으로 달려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운’이라는 요소가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하는 게임이 바로 ‘투자’라는 행위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이 시장의 속성을 이해하고 패턴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하지만 이는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시장의 움직임은 본질적으로 “복잡계(Complex System)”의 속성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복잡계는 혼돈, 또는 “카오스(chaos)”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카오스’는 해당 시스템을 아무리 정밀하게 관찰하고 어떤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특정한 패턴이나 법칙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복잡계는 일정 부분 의미있는 패턴이나 나름의 일관된 원리와 원칙이 발견되고 이것이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이 아주 중요한데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나 사건들이 독립적이지 않으며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받고, 그러한 상호작용이 다시 되먹임(feedback)을 일으키면서 본질적으로 모델링이 불가능해지는 특성을 나타냅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되먹임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원인이 결과가 되고 다시 결과가 원인이 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고 진화해가기 때문에 이를 모두 계산해서 예측하는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장 움직임을 이해해보자면 늘상 원인과 결과가 상호작용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폭락이나, 유래없는 대호황의 원인을 설명하거나 그 전조 증상을 찾는 행위, 혹은 표준모델에 의거하여 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무의미하며 심지어 잘못된 예측은 꽤나 위험하기까지 합니다.그렇다고 시장의 움직임이 완전히 랜덤하게 움직이며, 어떠한 원칙도 없는 카오스의 상태인 것은 아닌 것이 바로 시장 움직임의 강도와 빈도 사이에는 어떠한 규칙성이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즉, 시장의 상승과 하락의 시점을 정확히 예견할만한 전조 증상이나 원인 등을 찾기는 어렵지만 시장 움직임의 강도와 빈도 사이에는 어느 정도 일관된 통계적인 유의성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어떠한 통계적 분포를 설명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정규분포모델은 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는데 굉장히 큰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표본을 이루는 요소나 사건들이 독립적일 경우에만 정규분포확률은 성립하는데 복잡계의 속성을 지닌 시장의 움직임은 서로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학교 학생들의 신장(키)의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르는 이유는 신장에 관한 한 학생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 뿐더러(옆 친구 키가 크다고 내가 키가 커지는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 학생 한 명이 표본에 추가될 때 분포에 미치는 영향력은 학생들 모두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개별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벌이는 네트워크의 일부인 것과 동시에 특정 사건의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월등할 수 있는 상황(특정한 사건이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더 많이 상호작용의 결과를 만들어냄)이라면 정규분포로 이러한 현실을 올바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아래의 그래프와 같이 시장 수익률의 분포는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고, 특히 양극단 값이 훨씬 자주 출몰하는 팻테일 현상을 나타냅니다.


즉 정규분포에서 가정하는 것보다 극단적인 시세 변동이 실제 시장에서는 훨씬 더 자주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1987년 블랙먼데이 사건 같은 경우는 정규 분포대로면 7000년에 1번 정도 나타나야 하는 아주 희귀한 사건이었지만 고작 100년 남짓한 시간 안에 등장한 것이 단지 운이 정말 없어서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우 지수와 같은 개별주가 아닌 전체 시장 지수조차 전통적인 정규 분포에서 예상한 것보다 급격한 시세 변동이 2000배 이상에서 발생했습니다. 나심 탈레브는 이러한 극단적인 사건들을 ‘블랙스완’이라는 용어로 비유했습니다. 마치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기 전까지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했듯이, ‘블랙스완’으로 비유되는 사건은 분명히 과거의 경험으로는 존재할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운 극도로 낮은 확률의 사건이기에 발생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일단 발생하고 나면 극심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아예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실제 투자 현실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규분포보다 훨씬 더 자주 블랙스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포트폴리오에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즉, 대략 평균값 근처에서 대부분의 시장 움직임이 있으며, 어쩌다 한번 발생하는 특이 사건이 있다고 인식하기 보다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그러나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자주, 그리고 어쩌면 반드시 ‘블랙스완’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두어야 합니다. 앞서서 이야기 했듯이 시장은 복잡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블랙스완’의 발생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특별한 사건의 발생빈도와 강도를 설명해주는 유의미한 통계적인 사실이 관찰됩니다. 아래의 그래프들을 먼저 살펴봐주세요.




위의 그래프는 S&P500의 지난 1928년부터 2022년 5월까지의 일간수익률을 히스토그램으로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일간수익률을 양의 수익률과 음의 수익률로 나눈 다음 각각의 구간별 빈도수를 히스토그램으로 나타내고, 이를 잘 반영하는 추세선을 함께 표시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추세선의 그래프가 멱함수의 형태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멱함수의 개념이 좀 많이 생소하신 분들이 있을텐데 멱함수는 흔히 ‘POWER LAW’라고 하며 y=axⁿ 형태의 거듭제곱 함수를 말합니다. y=ax같이 선형적 관계가 아니고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특징이며, 세균들의 번식이나 지진, 산불 등의 자연 현상이나 지금은 좀 퇴색되었지만 한동안 회자되었던 반도체 업계에서 무어의 법칙 등이 이러한 멱함수 그래프를 따른다고 보면 됩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시면 S&P500 일간 수익률의 구간별 발생빈도를 설명하는 추세선의 공식도 y=axⁿ 형태의 멱함수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것의 R제곱값이 거의 1에 근접한다는 것을 토대로 볼 때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정규분포가 아닌 멱함수 분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양극단값으로 갈수록 그러하며, 만약 미국 S&P500 기업들의 개별적인 주가 움직임들을 각각 취합해서 같은 방식으로 그래프를 그렸다면 좀 더 확실한 멱함수 분포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양쪽 꼬리 부분에서 멱함수를 따른다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듯이 시장은 완전한 랜덤워크로 움직이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즉, 완전한 카오스가 아닌 복잡계 속성을 띄고 있습니다.) 만약 시장이 랜덤워크를 따른다면 시장의 수익률은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지만, 멱함수 분포를 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보다 극단적인 값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규분포 대비 멱함수분포의 극단값의 발생빈도가 꼬리값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작기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팻테일 혹은 블랙스완 등의 사건을 보다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규분포확률의 예측으로는 시장이 하루에 6% 이상 떨어질 확률은 0.0000987% 정도에 불과하여 사실상 4000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한 수준의 일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제 발생빈도는 0.2% 정도로 이는 2년에 한번 정도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상보다 2000배는 더 자주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평균과 표준편차를 통해 시장 변동성을 확률로 추산해 볼 수 있는 정규분포와 달리 우리가 멱함수 분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가격의 움직임이 더 많이 자주 일어나고 (보시다시피 -1%~1% 사이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큰 가격의 움직임은 드물게 일어난다는 사실 뿐이며 이를 통해 어떠한 예측을 할 수 없습니다. 양극단의 값이 존재하기 때문에 평균은 별다른 의미가 없고, 표준편차는 사실상 무한대로 귀결됩니다. 즉, 어떤 분포의 형태가 멱함수의 형태를 나타낸다면 정상적이거나 전형적인 값이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정규분포를 따르는 키를 다시 예로 들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150cm~2m의 키를 가지고 있으며, 대략적인 평균값과 표준편차 값이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만약 사람의 키가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면 제일 키가 큰 사람은 63빌딩만큼 크고, 그 다음 키를 가진 사람이 아파트 정도의 높이만큼 클 것이며, 그 다음 키를 가진 사람은 아파트 앞의 키 큰 나무 정도의 키를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볼펜 정도의 키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분포값들의 평균이 4m 정도라고 계산이 나왔다고 한들 이 분포 집단의 어떠한 점도 대변해주지 못할 것입니다.
헷갈릴 수가 있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는데, 큰 것이 드물다는 의미가 큰 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큰 사건일수록 드물다라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오히려 큰 사건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봐도 좋다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정규분포 가정이라면 거의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멱함수 분포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주 높은 확률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큰 움직임일수록 발생빈도는 멱함수 패턴에 따라 줄어들 것이긴 하겠지만 정규분포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가격 움직임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블랙스완은 따라서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자주..)

이상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며, Ladder&Bridge 팀만의 비약적인 주장 또한 아닙니다. 경제물리학의 대부 유진 스탠리(Eugene Stanley)가 보스턴 대학의 동료 물리학자들과 함께 1999년에 발표한 논문 “Scaling of the distribution of price fluctuations of individual companies (개별기업의 가격변동분포 스케일링)”에서 미국의 1천 개 기업에 대한 2년간(1994~1995)의 5분 데이터와 16,000개 기업에 대한 35년간(1962~1996)의 일간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수익률 분포가 팻테일과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위의 그림이 바로 이 논문입니다.) 이보다 더 앞선 1963년 망델브로는 “The Variation of Certain Speculative Prices (투기적 가격의 변동성)”이라는 전설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이 논문에서 바로 수익률의 분포가(논문에서는 면화의 가격 수익률) 정규분포가 아닌 팻테일 현상을 나타나는 급첨분포이며, 수익률 분포의 꼬리 영역에서 멱함수 법칙이 나타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했으며, 이어지는 후속 연구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이미 1900년 중반부부터 주장되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재현되고 있는 시장의 아주 주요한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글이 좀 복잡해져서 핵심만 다시 요약해보겠습니다. 투자라는 행위의 본질은 나 자신의 실력보다는 시장의 움직임에 더 많이 영향을 받기에, 이것은 실력보다는 운의 요소가 투자 성과에 많이 개입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장의 움직임은 완전히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정규분포를 따르지는 않으며,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나 사건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의 특별한 원인을 찾거나 예측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아주 극단적인 시세 변화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며, 이것은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